“의자의 높이와 위치가 어떠하든, 우리는 그에 따라 몸을 맞춰 앉는다. 이처럼 가구는 인간의 삶 속에서 행동 패턴과 생활양식을 무의식중에 천천히 바꾸어 놓는 기물이고, 이것이 가구가 매력적인 이유다. 가구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의 일상과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모종의 개념과 의미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가구가 내 손을 떠나 소장하는 이의 곁에 오랫동안, 그리고 묵묵히 자리하며 좋은 영향을 끼치고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길 원한다.” 김현희, 2020년 12월 18일 인터뷰 중. 김현희 작가는 당연한 듯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일상의 가구를 통해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논한다. 시대와 공간, 관념의 경계를 위태로이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그동안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곳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옮긴다. 그 시선으로부터 우리의 사고와 생활의 한계를 규정 짓던 프레임,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삶의 규범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균열이 건네는 담담한 위로와 용기가 이 불안한 삶을 우직히 살아가게 한다. 김현희 작가의 가구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며 삶을 더 가치 있게 변화시킨다는 데에 그 힘이 있다. 김현희 작가의 작업은 항상 과거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세련된 알루미늄 소재에서 현대적인 물성이 나타나듯,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김현희 작가에게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그의 작업을 구성하는 축이며, 끊임없이 현재와 조우한다. 김현희 작가는 다양한 기록과 매체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이 많은 사람이 공감할만한 보편적 기억임을 깨닫게 되면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감정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작업의 철학을 두기 시작했다. 그는 기억을 담은 가구를 통해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하며, 궁극적으로는 안정에 이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빠른 리듬으로 불확실한 미래만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의 아름다움을 회상하고 추억하는 것은 곧 나를 성찰하는 것이며 지금을 더 잘 살아가게 하는 방법일 것이리라. 관념과 규범, 제도에 대한 김현희 작가의 문제의식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제주에서 나고 자라, 생존력이 강한 여성이라고 정의한 김현희 작가는 모부장적인 성향의 고향 환경 덕에 여성을 억압하는 환경에 대한 의문을 일찍이 가져왔으며, 이를 한국의 전통 가구 모티프를 통해 아름답고도 날카롭게 그려낸다. 김현희 작가가 전통 가구를 모티프로 선택한 것은 독일에서 겪었던 경험의 영향이 컸다.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모습에 감동한 김현희 작가는 제주의 전통 가옥을 보고 자라며 체득한 한국적인 건축, 문화 및 가구의 조형 요소가 자신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를 구성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 가구가 한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나를’, ‘여성을’, ‘세대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관념에 대해 도전하기에 적절한 매체라고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발견을 바탕으로 김현희 작가는 전통 가구의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담긴 전통적 관념과 개념을 전복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조선시대에 주로 쓰이던 전통 가구를 연상시키는 그의 작업은 전통적 재료인 나무를 유리와 알루미늄 뼈대로 대체하고 조형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 이해하기 쉽지만, 작품을 가까이서 보고 만지면 이내 외부와 내부를 가로막는 유리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김현희 작가는 이러한 감각의 충격이 변화의 시작점이라 본다. 특정한 관념에 의해 정의하고 인식해오던 것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우리의 삶을 규정해온 선입견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가구라는 매체를 통해 직접 깨닫고 이를 스스로 재정의하게끔 하는 것이다. 기존의 관념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것까지가 김현희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몫이고, 이를 수정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이에게 달려있다. 이러한 김현희 작가의 작업은 특히 여성 관람자에게 남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김현희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알루미늄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표현되어 다소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고, 오롯이 프레임으로만 구성되어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있을 수 있는 그 모습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하며, 이것이 현대에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외적으로만 아름답기보다는 불안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이 김현희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이다. 본 고의 저작권은 리마에 있으며 동의없이 도용 및 무단 재배포를 금합니다. 문의: info@gallerylima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