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폭에 세밀한 붓질로 그어진 선은 묵직한 울림을 주며, 때로는 그 속에 응축된 고매한 정신성까지 느끼게 한다. 제 갈 길을 아는 듯 뻗어나가는 선은 한 획일지라도 보는 이를 잠잠히 위로한다. 방화선 명인은 붓 대신 손 끝의 감각으로 이러한 선의 미학을 빚어낸다. 선자장 방화선 명인의 부채는 유려하게 떨어지는 선들이 맞닿아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며, 이따금씩 방향을 트는 선으로 인해 명랑하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선이 조화롭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잘라내며 수행하듯 대살을 놓는 방화선 명인의 선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있다. 방화선 명인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10호 선자장 고 방춘근 명인의 장녀로서 대를 이어 부채를 만드는 유일한 장인이다. 부채가 인생의 전부와 다름없다는 상투적인 표현에는 방화선 명인의 생사고락이 묻어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매일 부채 만들기 숙제를 내시던 아버지 곁에서 특유의 성실함과 열정으로 전통기법을 자연스레 전수받았고, 직접 사복을 망치로 새겨서 만드는 정성까지 체득했다. 덕분에 방화선 명인의 부채는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재료 수집은 물론이고 대살을 깎고, 소목을 배워 손잡이를 직접 조각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권태를 느끼진 않느냐는 질문은 너무나 무색했다. 방화선 명인은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의 달과 꿈 속에 펼쳐진 색의 향연, 그에서 비롯된 감정을 모두 놓치지 않고 곧바로 부채에 옮겨 담는다. 방화선 명인에게 매순간은 부채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고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부채가 일으키는 바람은 그를 닮은 듯 생동하고 활기차다. 방화선 명인의 어린 시절, 고 방춘근 명인은 한지를 둥그렇게 도련하다가도 때로 가위의 방향을 바꿔 복숭아 모양을 만들곤 했다. 방화선 명인의 어머니는 아무렇게나 놓인 비단 짜투리를 모아 전형적인 태극선이 아닌 새로운 색조합의 부채를 만들었다. 방화선 명인은 이러한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변주에 크게 매료됐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그는 전통을 따르면서도 정해진 형식만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방화선 명인의 부채에서 현대적이고 세련된 미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그는 부채를 만들며 순간적으로 손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여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작업의 철학으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움과 조우하게 된다. 이렇게 우연성이 만들어낸 부채의 매력은 계획된 것보다 진한 감동을 주고 그의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닮은 듯 모두 다른 방화선 명인의 부채들은 유일함에서 비롯되는 기쁨을 선사한다. 방화선 명인의 단선은 흔히 생각하는 둥근 형태의 부채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무궁무진한 형태가 가능하다는 점이 단선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방화선 명인은 가늘게 쪼갠 대를 구부려 연잎, 연자, 장미, 동물 등을 본 딴 곡두선을 만들고, 여기에서 그가 만드는 선의 아름다움이 정점에 이르며 그의 실험정신이 십분 발휘된다. 자연을 닮은 그의 선은 우리의 삶과 일상이 곧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리저리 구부러진 선과 그것이 이루는 면은 얇은 두께에서도 입체감과 깊이감을 주어 삶의 굴곡마저 느끼게 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유되는 정서이기에 방화선 명인의 부채는 타국에서도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분명 부채에 담긴 그의 진심과 열정까지 전해진 것이리라. 이렇듯 그의 부채는 바람을 통해 사람과 삶을 연결한다. 본 고의 저작권은 리마에 있으며 동의없이 도용 및 무단 재배포를 금합니다. 문의: info@gallerylimaa.com